백두대간(2011.12. 17. ~ 2013. 5.4

1.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하진수 하진수 2013. 4. 11. 11:23

 

허약체질, 반 평발, 이런저런 핑계로 운동은 항상 뒷전이었던 나

동네  뒷산도 오르기를 꺼려하던 몸이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부터 비실거리기 시작하였다.

하여 주변에 있는 문수산을 둘째 상호와 함께 갔다오기를 반복하니

나도 모르게 좋아진 컨디션이 삶의 활력으로 되살아나는듯한  기분이 좋다

그러다가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또는 산악회 회원으로 간혹 산행을 하면서 오르막을 오르거나 힘듦을 느낄때는

애꿎은 산대장을 꼽씹으며 재물로 삼고, 산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마음은 산에가고 싶은데 몸이 마음대로 안되면서  산보다는  조그마한 골프공만 가지고 노는 날들도 많았다.

어느 날 TV에서  대관령과 지리산 등,  백두대간의 한 능선을 지나가며  등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목에는 지도와 나침반을 걸고, 혼자 또는 남녀, 노소 구분없이 여러명이 줄지어 구름같이 훨훨 지나가는 그들.

그들이 우리나라의 골간을 이루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때는 일제의 침략으로 오천년 민족의 역사와 정신을 모조리 훼절하면서 백두대간은 토막나고,

생소한 이름으로 붙여진 산맥이 강을 건너는 웃지 못할 비극 속에 백두대간의 개념은 뒤안으로 사라지기도 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산과  강이 공존하여 산은 물을 낳고 물은 산을 가르지 않는다고 여긴

우리 조상들의 지리 인식의 바탕아래 다시 그 맥을 이어 오게 된 백두대간이다

우리 땅, 우리 산의 근골을 이룬 기준 산줄기 백두대간을,

나도 언젠가는 종주를 해보리라는 마음은 아마 그 무렵부터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가슴 속, 마음에만 간직해 오던 백두대간 종주의 꿈이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시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완주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선택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하늘 길 백두대간의 종주.

지리산 천황봉을 출발하여 덕유산, 속리산, 소백산,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 진부령까지 능선 길 800 여 km,

접속길 100 여 ㎞, 실제 산행거리 900 여 km의 기나긴 길, 하루코스로 짧으면 15km에 8시간, 길게는 30km에 14시간 이상을 걷는다.

당일 산행 또는 무박 2일 산행 일정으로 한 달에 두 번씩 1년 5개월에 걸친 어렵고 힘들었던 여정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듯, 누구도 산을 대신 올라줄 수 없기에 오로지 ‘온몸으로 온몸을 밀어서’ 나아간다.

아무리 멀고 험한 길도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소용없는 불평과 불만으로 스스로를 나무라지 않았고,

더우면 땀을 흘리고 추우면 몸을 떨면서, 비가 오면 맞고 바람이 불면 몸을 움츠리며 걸었다

미련스럽게 산을 타고, 걷고 또 걷다보니 언젠가부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를 맞아주는 산,

내가 다가가던 산이 달라지며 따뜻해지기 시작한다.

어느덧 길섶의 꽃과 풀, 나무가 눈에 들어오고, 함께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마주치는 이들의 어깨에 인사도 나누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얼마나 먼가를 짐작했기에 먼 길을 걸으면서 차츰 몸과 마음도 건강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산을 오르는 일은 높은 만큼 깊고, 깊은 만큼 높은 이치를 깨닫는 일에 다름이 아니다.

내리막길을 달려가면서도 자만하지 않고, 오르막을 기어오르면서도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상과 심연은 하나’라는 어느 작가의 말과 같이 가장 높은 산이 가장 낮은 바다에서 솟아오르듯

절망과 희망, 죽음과 삶, 고통과 희열은 애초부터 둘이 아니고 하나였겠지.

이제, 넘어온 산 보다 더 적게 남은, 넘어야 할 삶 앞에서 신발 끈을 단단히 조이며,

더 가볍게 즐겁게 더 밝은 눈으로 더 멀리보기 위하여

새로운 산,  삶의 길을 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