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산행

양동마을, 2019. 3. 3.

하진수 하진수 2019. 3. 14. 12:08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일시 : 2019년 3월 3일
장소 : 경주 양동마을

누구: 하진수,김두한님 부부, 아내



예정대로 오늘 일정은 양동마을이다.
사실 일정표를 만들때는 쉬엄 쉬엄 하고자 양동마을 or 보문호수라 했었다.
그런데 어제저녁 술한잔 하다 양동마을 and 보문호수로 바꿨다.
아침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21평이라 거실 하나 방하나인 켄싱턴 리조트
하여 방에는 여자들이 거실에는 남자들이 차지 하다보니

자동 거실에서는 술과 함께 이런 저런 의견이 니왔나 보더라
8월 휴가때 태국 가는거 하며 오늘 일정이 바뀐거 하며

모처름 의견일치를 보았다나 어쨌다나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오로 코를 골면서 자는데

밤새 회장실을 들락거렸던 진수 형님도 있었다는 의견이다.
느긋한 아침을 맞았다.
술때문에 그리고 아픈배를 안고 들락거리는 사람들
오늘은  양동마을 or 보문호수로 해야겠다는 생각이지만

나중에 출발할 적에 다시 바뀐다.
그런데 프론트에서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 공사로 31평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준다면서 옮길것을 요구한다.
오늘 저녁 마무리 지을 예정인데 31평이라니 자고 간다는 진수형님
하여, 31평으로 옮겨달라하고 10시넘어 리조트를 나선다.
목적지인 양동마을까지는 거진 1시간 거리다.



2010년 7월 31일 브라질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제 34차 회의에서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협약 선포 40주년 기념

세계 최고의 모범 유산(The Best Model Case)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마을지도다.

켄싱턴 리조트를 출발한다.

양동마을 문화회관이다.

주차장을 지나 양동문화 마을로 들어서자 오른쪽 벽화앞에서 장난을 한다.
그네 타는 여인네의 차마자락 안에 뭐가 있다구?
양동마을은 1984년 12월 20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었다.
경주시 북쪽 설창산에 둘러싸여 있는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종가가

500여년 동안 전통을 잇는 유서 깊은 반촌 마을이다.


통로를 지나면......매표소이다.


양동마을 매표소인다.
아이들 어릴적에 다녀간곳이라 눈에 익은 곳인줄 알았는데 개보수를 해서인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입장료가 4000원이다.
그런데 포항시,영덕군,울진군,울릉군 주민에 한해서 50% 할인 한다네

해설사도 시간대별로 운영하고 있어 누구나가 그시간대에 오면 들을수 있다고 한다.
참 괜찮은 생각이다.
09시 30분을 시작으로 하루에 13차레 운영 한다고 한다.
하여 우리도 11시30분에 운영되는 해설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양동마을은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즉 경주손씨 대종가가 5백년 동안 종통을 잇는

유서 깊은 민속 마을이라는 설명부터 시작한다.
대향조는 손소라고 한다.
원래는 풍덕류씨가 살던 곳이었는데  손소가 25세때 류씨 집안의 복하란 분의 딸과 결혼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안골 부락에 터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큰 아들에게는 후사가 없어 둘째 아들 중돈이 종통을 이었다고 하는데

그가 바로 조선 명현의 한 분으로 청백리에 오른 우재 손중돈선생 이라고 한다.
이로써 경주손씨는 양동에 토착기반을 견고하게 다질 수 있었으며 

우재선생의 여동생 손씨부인이 여주이씨 이번과 결혼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장남이 동방오현의 한분인 문원공 회재 이언적선생이다.

양동마을은 풍수의 길지에 입지했다는 설명이다.
마을의 뒷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에서 문장봉으로 뻗어 내려 네줄기로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가 勿(물)자 형의 형국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 유명한 지리지인 택리지에서 길지로 언급됐으며

조선의 풍수에서 삼남의 사대길지에 포함됐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은데 일예로 勿자의 아랫부분에 획 하나를 더하면

血자가 된다하여 일제가 계획한 마을 안으로의 철도 통과를 집회로 우회시켰고,

남향의 양동초등학교 건물을 동향으로 돌려 앉혔다

양동마을 안채 모두는 앞산 필봉을 정면으로 두고 있다고 하여

경주지역 급제자 5여명중 절반이 이곳에서 배출했다고 한다.
그중에도 서백당은 설창산의 기를 받은 명혈지라는 평을 받고 있다

당대 세사람의 문필가가 날수 있는 자리라 

이미 두사람은 태어 났고 한분이 아직 남았다는 이야기다.

향단(香壇) 보물 제412호 이다.
직접 가보진 못했으며 설명을 들어보면
낮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이 집은 興字型으로 지은 건물로

앞쪽에 세워진 향나무 한 그루가 상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외견상으로 보아 무척이나 화려하고 과시적이다.
특히 마당을 앞에 둔 사랑채는 두 개의 나란한 지붕을 연결하여

풍판을 정면으로 향하도록 한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해설사의 친절한(?) 설명




관가정(觀稼亭) 이다.
보물 제442호이며 담벽 공사중이다.
 
관가정(觀稼亭)이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이라는 설명이다.
내려다볼수 있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주택은 청백리이자

조선 성종(1469-1494)으로부터 중종(1506-1544)조에 걸친

명신 우재(愚齎) 손중돈(孫仲暾 1463-1529)선생이 손소 공으로부터 분가하여 살던 집이라고 한다.
현재는 사람이 살지 않고 비어 있어 양동마을에서 집안을 구경할수 있는 네곳 중 하나.
격식을 갖추어 간결하게 지은 우수한 주택건축으로 한 눈에 들어오는

형산강과 경주를 품어 안은 경관이 일품이다.
하인들과 같은 일직선 상에 집을 지어 평등함을 알려주려 했던 곳이라고 한다.








물봉동산 이다.
관가정(觀稼亭)왼쪽으로 올라서면 
나무 울타리와 초가의 흙담 뒤로 난 산등성이 황토길이다.
나름 산책하기에 멋지다.
이곳에서도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저곳이 안골이며 서백당이 있는곳이며 아래쪽이 물방골로

이언적 선생의 생가가 있는 무첨당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설명을 마치며 동선을 이야기한 후 각자 헤어진다.


무첨당(無?堂) 보물 제411호다.
설명에 의하면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부친인 성균생원 이번(李蕃)공이 살던 집으로

1460년경에 지은 여강 이씨(驪江 李氏)의 종가로써,

별당의 기능을 중요시한 간결하고 세련된 솜씨의 주택이다.
무첨당(無?堂) 해는 이언적 선생의 다섯 손자 중 맏손자인 이의윤(李宜潤)공의 호이며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오른쪽 벽에는 대원군이 집권 전에 이곳을 방문해 썼다는 죽필(竹筆)인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이라는 뜻이다.




서백당(書百堂).

보물은 아니며 중요민속자료 제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골 중심의 산중턱에 자리잡은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옥으로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 1433~1484)공이 성종 15년(1454년)에 지은 월성(月城) 손씨(孫氏)의 종가이다. 
서백당(書百堂) 또는 송첨이라 부르며, 서백당(書百堂)은 하루에 참을 인(認)자를 백번 쓴다는 뜻이며

근래에 와서 굳어진 당호(堂號)이다.



수령이 500년 되었다는 향나무

서백당 본체



국무총리가 다녀 갔다는 양동마을 카페

감주.


슈퍼


민박

식당




관람후 곧장 숙소로 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