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17. 울산 원조산악회 백두대간 5기
산행시간: 03:20-15:51(12시간 31분)
날씨: 새벽= 이슬비, 아침및오전= 구름, 오후= 간혹 맑음
비교적 산행에 알맞은 온도임
함께한 사람: 14명
구간: 늘재-밤티재-문장대-신선대-천왕봉-피앗재-형제봉-갈령-비재
이동, 도상거리: 20.93㎞, 20.07㎞
평균속도= 휴식포함: 3.05㎞/h
= 휴식제외: 3.36㎞/h
고도: 1075~344(731)m
오르막거리, 속도: 10.31㎞, 3.30㎞/h
내리막거리, 속도: 10.97㎞, 3.65㎞/h
휴식횟수, 시간: 7회, 1시간 27분
지난 번 신의터재에서 비재 구간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량내에서 돌무지 대장님이 다음 구간 중 문장대에서 관음봉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출입을 통재하는 구간으로 공단직원이 초소에 없을 시간인 새벽에 통과하려면 남진을 하는게 좋겠다고 하는 말에 모두 동의하면서 남진을 계획하고,,, 늘재를 산행 들머리로 삼아 비재까지 진행하기로 한다.
약 10일 전 기상청 예보는 금,토요일에 비가 온다 하였고,, 5일전에는 토요일 06시 까지 비, 2일 전에는 03시 까지 비가 온다라는 예보에 역시 재수좋은 우리 5기 비맞지 않고 산행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산행장비를 들처엎고 비를 맞으며 신복로타리에서 현대VIP 버스에 오른다.
비가 와서인지 아니면 대간 구간 중 셋째 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힘든 구간이다라는 소문이 나서인지 차량내에는 설여사님과 기사님을 포함하여 15명으로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 탑승해 있다...
이어 차량실내등이 소등되고 한잠 맛잇는 잠을 자고 일어나니 이슬비가 나리는 늘재 입구로서 이상한 석물들이 우뚝우뚝 솟어 우리를 맞이한다.
03:20에 늘재를 출발하여 열심히 걷다보니 05:00경으로 밤티재에 도착하였다,,,,
본래 충북알프스라는 말은 없었지만 충북 보은군에서 영남알프스를 본따 구병산과 속리산 천왕봉, 관음봉, 묘봉, 상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43.9km를 충북알프스로 지정하고 특허청에 업무표장까지 등록해 놓았다고 하는데, 그 일부구간인 관음봉에서 문장대 사이의 암릉산행이 시작된다.
06:00경 해드라인 불빛을 따라 열심히 걷던 늘솔길님 앞에 있는 나무를 잡는다는 것이 잡지를 못하고 놓쳐 약 3m 아래로 굴렸다, 모두 얼마나 놀랐는지,,, 다행이도 산신령님의 도움인지 타박상 정도로 그치고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척 놀라고 구르면서 나무에 부딪치는 바람에 옆구리가 걸려 하루종일 힘든 산행을 하셨다,,, 문장대에 올라갔는데, 설여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우리를 내려주고 한숨 자는데 꿈속에 여우가 토사리고 앉아있어 “저 놈의 여우가~~”하면서 비명을 지르며 깨었는데, 혹 사고는 없었는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하셨단다. 아마 점쟁이집 옆집에 사시는지~~~
고도가 높아지면서 눈도 쌓이고, 로프를 잡고 암벽을 오르는가하면 바위와 바위 사이를 뛰어 건네고, 일명 개구멍을 기어 통과하기를 수차례 정신없이 오르다보니 정상부근에 다다랐는데, 심한 안개로 조망이 전혀 없다, 안개만 없으면 암릉 등 멋진 조망을 볼 수 있는데 안개로 인해 조망을 보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지만 비 맞고 산행하는 것 보다는 백번 낮지 않느냐고 나름 위로를 하면서~~
출입금지 구간이라는 안내문이 설치된 곳을 지나니 곧 문장대가 나타난다.
문장대는 큰 암봉이 하늘 높이 치솟아 구름속에 감추어져 있다하여 운장대(雲藏臺)라 하였으나,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 꿈속에 어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 이라는 말을 듣고 찾았는데 정상에 오륜삼강(五倫三綱)을 명시한 책 한권이 있어 세조가 그 자리에서 하루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文藏臺)라 불리게 되었다는 안내문을 먼저 온 여자 산님 1분이 꼼꼼히 읽어보고 있다.
세번을 오르면 극락왕생을 한다는 문장대, 나도 이제 두 번을 올랐으니 극락왕생의 문턱은 잡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쉽게 극락왕생 할 수 있다면 누군들 이곳을 오르지 못할까? 문장대에 오를 때 처럼 교만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에 마음을 놓고 분별심을 버리라는 교훈은 아닐까,,,(철 계단이 없었을 때는 한걸음 한걸음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道不遠人 人遠道(도불원인 인원도)= 바르고 참된 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는데 사람은 그 도를 멀리하려 들고
山非離俗 俗離山(산비이속 속리산)=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 속세는 산을 떠나는구나
신라 때 고운 최치원 선생님이 속리산을 찾아보고 읊은 한시 한수를 떠올리며 문장대를 내려와 신선대를 향한다.
신선대 휴게소다, 오륙년전 과메기와 소주를 마시고 법주사로 하산한 기억을 되새기며, 돌무지님이 권하는 도투리묵과 신선주로 모두들 신선이 되어 천왕봉을 향한다.
짙은 안개로 공룡바위, 거북바위, 입석대 등 기암괴석의 풍광과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법주사쪽 수림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지리산 천왕봉 아래에 있는 통천문과 비슷한 천왕석문을 지나고 천왕봉에 오른다.
속리(속세를 떠난다)산 정상은 본래 이름이 천왕봉(天王峯)이었으나 일제시대 때 천황봉(天皇峯)으로 바뀌어 사용돼 왔고, 천황봉이 일본왕을 뜻하는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의미로 2007. 12. 26. 지명변경을 고시했다. 예전에 있던 정상표지석은 철거되고 새로운 정상석이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한남금북정맥의 분기점이기도 하고, 정상에 떨어진 빗물이 동쪽의 낙동강, 남쪽의 금강, 서쪽의 한강으로 각 흘려들어가는데, 이를 가르켜 '삼파수'라 한다는 안내문을 읽어 본다.
10:40경 천왕봉에서 경북 상주와 충북 보은의 경계를 이루는 산길을 따라 20분 쯤 내려오니 703m의 아늑한 재가 나온다. 그 재에서 한식당, 양식당, 맑은 누리님의 떡국탕 등 다양한 요리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형제봉으로 향한다.
한참을 오르락 내리락하다 보니 피맛재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형제봉까지는 1.6㎞ 왜 이렇게 멀리 느껴지는지,,, 오르막을 1시간 가량 가서야 형제봉이 나온다(13:20).
형제봉 정상은 암릉으로서 진행하는 대간길에서는 좌측으로 10m가량 올라갔다 다시 내려와야 되는 봉우리이다. 하루종일 안개로 시야가 좋지 않았는데 봉우리에 올라서니 햇살이 북쪽의 속리산을 비추고, 구병산으로 이이지는 충북알프스 능선, 남쪽의 백두대간 능선과 봉황산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급경사를 내려가니 갈령, 여기서 비재까지는 3.6㎞이다. 이제는 다 왔다는 안도감에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진행하는데, 웬걸 한참을 올라갔다 내려가야 되는 산봉우리가 최소 대여섯개는 된다. 과연 백두대간 코스 중 세 번째 안에 드는 난코스라는 소문이 헛 소문은 아닌것 같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열심히 걷다보니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서 마지막 남은 크림빵과 과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진행하니 못제다. 대간길 곳곳이 그렇듯 이곳 상주, 보은도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이고 예로부터 양국간의 싸움이 잦았던 곳이다. 백제가 멸망하고 훗날 후백제를 세운 견훤에 대한 설화가 이곳에 전해지는데,
견훤은 문경시 가은읍에서 태어났다. 삼국사기에는 견훤을 가은 출신 아자개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어느 날 부모가 농삿일을 하면서 강보에 싼 아기를 숲 속에 두었는데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여 사람들이 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광주의 한 처녀가 밤마다 찾아오는 건장한 청년과 정을 통했는데 정체가 궁금하여 옷고름에 실을 꿰어놓았다가 아침에 따라가 보니 커다란 지렁이와 연결돼 있었다 한다. 그리해서 낳은 아들이 견훤이란다.
훗날 상주에서 군사를 일으켜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세력을 확장해 나갈 때 보은지방의 호족인 황충과 자주 충돌하게 되는데, 매번 패하는 황충이 견훤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알기 위해 염탐한 결과 견훤이 이곳 못제에서 목욕을 하고 나면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견훤이 지렁이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고있던 황충은 못제에 소금 300가마를 뿌려 견훤의 힘이 사라지게 하여 이겼다는 곳이다.
비재가 눈앞에 보일듯 보일 듯 하지만 심한 내리막으로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마지막 안간힘을 쓰며 한발 한발을 내딛는다. 울타리님이 앞서서 걷기 쉽도록 낙옆을 치워주고, 새벽에 다친 늘솔길님이 걱정되어 마중나온 돌무지님은 말없이 조심스레 뒤따른다.
비재다. 지난 번 산행을 마치고 비재에 대한 안내문이나 표지석이 없음을 안 설여사님이 늑대에게 안내문을 세우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하였고, 그 제안을 선뜩 받아들인 늑대의 “비재, 1대간9정맥, 울산원조 산악회”라는 안내문이 멋스럽게 세워져 있다,,, 길이길이 남을 일이다.
오늘은 돌무지대장님의 회갑,,, 비재에서 회갑잔치를 할 수 있다니,,, 아무튼 돌무지 대장님의 회갑을 축하하면서 23번째 산행을 무사시 마치다. 울산원조산악회 백두대간 5기 파이팅!!!
석도님이 찰영한 사진을 많이 옮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차에서 잠자다 내렸는데, 뭐 이상한 석물들이?? 여기가 늘재 앞,,,,
문장대로 오르는 중 개구멍이라는 곳을 통과하면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깨끗한 사진으로,, 퍼온 사진임
밧줄에 메달려 암벽을 오르고
향토 예비군 훈련 받을 때 생각나지요,,,
스틱을 앞 사람에게 전달하고 밧줄에 메달리고,, 갈수록 눈은 더 쌓여있고
03:20분 늘재에서 시작하여 08시경 문장대에 도착,,, 벌써 힘이 다 빠졌다~~
구름으로 시야가 엉망입니다. 돌무지(김광남)님과 늘솔길님
석도님
목초님
나도 인증샷
달배 배용수님
맑은 누리님
늑대님
문장대 표지석 앞의 사진을 이렇게 찍었다오^^
단체로
세번을 오르면 극락왕생한다는 문장대
난 두번째 올랐고~~
날씨가 흐리지 않았다면 우리가 올라온 밤티재에서 문장대까지의 이 아름다운 암릉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이것도 퍼 왔음
이것도~~
UFO 바위~~
설화님과 늘솔길님
신선대 휴게소
5~6년 전 표지석 옆 식탁에 앉아 과메기를 안주하여 소주를 먹었는데~~
막걸리 한 통에 1만원~~
대장님은 엄숙히, 맑은누리님은 핡코있고, 늑대님은 좋아 게슴츠레하고, 저 뒤 하진수는 누가 뭐라케도 빨고 있꼬, 필봉님은 ???
천왕석 문(상고석문)
입석대~~
거북바위
천왕봉 직전의 산죽길,,,.
이제 천왕봉이 보이고~~
속리산 천왕봉,,, 아휴 힘들어~~
한남금북정맥의 분기점,,, 삼파수가 뭔지를 배웠삼
누군가 만들어 세운 앙증맞은 눈사람도~~
필봉 사모님,, 쯔쯔가무시로 인해 컨디션이 별로 임에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앞서 가고 있삼니다.
까~꿍,,,,,
엄~숙---
천왕봉에서 한참을 내려와 점심을
또 이곳에서부터 급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아주 쥑여 줍니다.
울타리님과 설화님,, 보기 좋습니다. 표지 사진으로 올리시지요.~~~
저 앞 보이는 산이 22번째 산행 구간의 한 봉우리인 봉황산임,,,
우측끝이 밤티재, 문장대,, 좌측끝 높은산이 천왕봉,, 이곳 형제봉까지 멀리 걸어왔다. 휴---
비재까지 3.6킬로 남았는데, 여기가 더 죽인다. 한참을 내려가고 올라가야 하는 봉우리가 최소 대여섯개는 됨 아주 죽여줍니다. 아마 내 생각으로는 성삼재에서 매요리까지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고, 그 다음이 이번 속리산코스~~
봉황산,,,
낙옆 쌓인 편안한 등산로,,,,
이곳 못제는 여름에 물이 고인답니다.
각 재마다 안내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 비재에서는 안내석이 없는 것을 안 설여사님,, 늑대님에게 안내문을 만드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고, 이에 성큼 만들었다는 늑대님의 비재 안내문,,, 두고두고 남을 멋진 표지문입니다.
현판 기념 단체 사진^^^
대장님의 60세 생일 케익^^
노래도 부르고~~
술과 고기로 하산식도 하고,,, 회갑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