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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번째(신의터재-윤지미산-화령재-봉황산-비재)

하진수 하진수 2012. 11. 4. 09:50

 

  

2012. 11. 3. 울산 원조산악회 백두대간 5기

산행시간: 08:13-15:35(7시간 22분)

날씨: 전형적인 가을 날씨, 산행에 최적임

함께한 사람: 20명

구간: 신의터재-윤지미산-화령재-봉황산-비재

이동, 도상거리: 22.62㎞, 21.84㎞

평균속도= 휴식포함: 3.05㎞/h

= 휴식제외: 3.36㎞/h

고도: 767~286(481)

오르막거리, 속도: 11.09㎞, 3.12㎞/h

내리막거리, 속도: 11.07㎞, 3.47㎞/h

휴식횟수, 시간: 2회, 40분

 지난 5. 5.,, 신의터재에서 10번째 산행을, 덕유산구간 11번째 산행을 마친 후,,,

강원도 쪽의 백두대간 길은 입산금지 또는 폭설 등으로 산행이 쉽지 않으니  여름철에 강원도에 있는 산을 등산하자는 회원님들의 말씀에 과연 그 험하고 높은 산을 어떻게 다 탈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걱정이 앞섰던 곳,,,

늦가을 아침 햇살이 가득한 그 곳을 다시 찾게 되었다, 하느님의 보살핌인지 날씨는 그저 그만이고,,,,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무지개산, 이쁜 윤지미, 상상속의 봉황이 날개짓 하는 봉황산의 대간길에서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싯귀를 엎조리며 낙엽쌓인 대간길을 내달려 본다.

해발고도가 280m인 신의터재, 표지석에 “임난 이전에는 신은현(新恩峴)이라 불리었고, 임난때 의사 김준신(金俊臣)이 이 재에서 많은 왜병을 도륙하고 임진 4. 25. 장렬하게 순절한 사실이 있은 후부터 '신의터재' 라 불리었으나 일제 때 민족정기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어산재' 로 불리게 되었고, 문민정부 수립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민족정기를 되찾고 후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교육의 장으로 삼고저 옛 이름인 '신의터재'로 다시 고치다.”라 되어있다.

고도차이가 별로없는 구간으로 푹신한 낙엽쌓인 길과 노간주군락지, 낙엽송군락지를 지나면서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땡감의 반홍시를 따 먹어가며 산행속도를 높인다.

어느 듯 무지개산 입구 삼거리를 지나는데 항상 후미로 가던 후미팀이 선두가 되었다. 돌무지대장을 비롯한 선두들은 약 200m 우측에 있는 무지개를 보러갔단다. 어찌하였건 후미들이 선두가 되었음을 감개무량하게 여기며 진행하는데, 앞서가던 야시야님과 자연님 축지법을 쓰는지 너무 잘 달린다. 애라 모르겠다, 이럴때 오바페이스 한번 해보자며 죽어라 따라가 보는데 윤지미산 못미쳐 뒤처진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데,,,, 무리를 하였는지 그 이후부터는 다리가 풀려 죽을 맛이다.

윤지미산,,, 소머리 모양을 닮아서 소머리산이라고도 불리는 윤지미산의 어원은 '인생전반을 다안다' '세상을 포용한다' '세상을 두루 알아 맞히다.' 윤집걸중이란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정확성은 미심쩍다. 정상은 마치 돌무덤처럼 쌓아놓은 돌 무더기 위에 편평한 돌판에 누군가 윤지미산이라고 써놓은 정상 표지석이 있고 그 옆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윤지미산 정상에서 화령재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다. 비나 눈이 쌓여 있을 때는 특히 주의가 필요한 구간인 듯 싶은 곳으로 조심조심 산을 내려오니 화령재 1km 라는 이정표가 반기고,,,,

설여사님이 태화루를 챙겨 옆구리에 끼고 마중을 오셨다,,, 권총무님이나 설여사님의 호의에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분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대간을 잘 가고 있는데,,, 임도를 지나 구릉지대를 넘어서니 당진과 상주를 잇는 고속도로가 보이고 고속도로 터널위에서 사진도 찰영해 본다.

이어서 국도 25호선이 지나가는 화령재,,, 조선시대 때 상주시 화서면 소재지가 화령현이었는데, 화령현을 넘나들던 고개라 하여 화령재라 하였다 하고, 화령의 옛 이름은 답달(닿은산), 달은 산(山)의 옛말이란다. 6.25. 전쟁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인민군 1,500명이 사망하였단다. 그 옆 넓은 공터에 커다란 표지석을 세우고 팔각정도 아주 잘 지어놓았다.

설여사님이 준비하신 메기메운탕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준비해온 도시락을 비우고 출발을 하려는데, 필봉선배님 형수님이 “나 안가면 안될까. 너무 힘든다”라 하신다. 옆에서 가지 말라는 사람, 그래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좀 참지 땡방 하려 올 수는 없지 라며 함께 가기를 권유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산행길,,,

왜 이런 짓을 이토록 고생을 하면서 하는지??

일년 가까운 세월 대간길을 걸으면서 수 없이 많은 시간동안 문제와 해답사이를 오가면서도, 아직도 정답을 못 구한 의문의 난제를 지금 또 다시 자문자답(自問自答) 해보지만 끝내는 미완(未完)의 굴래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날 전승훈에게 물었다, “니는 왜 이 고생을 하면서 따라다니느냐”고 그러자, 첫째는 자신의 인내력과 체력을 테스트해보고 싶고, 두 번째는 대간길 부근은 태어나 한번도 가보지 않았는데 가 볼 수 있어 좋고, 세 번째는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먹는 하산주가 좋아서라하면서 덧붙여 무아지경에 빠져 걷다보니 어려운 문제들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더라,,,,,(혹 잘못 알아들은 부분은 없는지??)

필봉선배님 형수님이 힘들어 하는 것을 도와주지 못하여 안타가워하며 뒤따라가다보니 봉황이 날개짓을 한다는 봉황산이 나타나고, 멀리 다음 구간인 속리산 천황봉과 주변의 주병산, 백화산, 두리봉, 형제봉 등이 한눈에 보인다. 뒤돌아보니 지나온 구간들도 꿈속같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모처럼 울타리님 부부의 다정다감한 모습도 찰영해보고,,, 화이트맥주, 고량주(딱 들켰어)에 과일등으로 오늘의 산행 마지막을 준비한다.

경사가 심한 봉황산을 내려서니 비재다. 나르는 새의 형국이라 비조재, 비조령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비재에는 맑은누리님을 모시려온 에쿠스가 기다리고 설여사님이 정성스레 준비한 떡국 등으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한다.

34개 구간 중 22개 구간을 벌써 마쳤다,,,, 처음 시작할때에는 언제 다 타지 라며 조바심을 내었는데, 이제는 벌써라는 말이 나오며 남아있는 12개 구간,, 아껴 또 아껴가며 맛있고 뜻깊고 보람있는 산행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것은 왜 일까??? 울산원조산악회 백두대간 5기 파이팅!!!

 

 

 

 

지난 5. 5., 10번째 산행을 마치고 삽겹살을 곁들여 하산주를  하였던 신의터재 팔각정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 중 한 곳인 신의터재

 

 

신의터재 표지석 앞에서 출발 기념 찰영

 

이 표시석은 신의티로

 

 

가을 햇살을 가득 받으며 상큼한 출발

 

 

잠시 왔는데

 

 

필봉 사모님,,,  몸이 좋지 않음에도 대간을 완주하리라는  의지로 따라 나서고

 

 

 

 

 

 

수확을 포기한 떨감,,  맛도 보고~~

 

 

 

 

 

 

무지개산을 들렸다 온 돌무지님과 자연님,, 덕분에 후미팀이 선두도 해보고~~

 

꼴찌로 따라오기는 처음인 조규암님,,, 당근 기념 찰영~~

 

당진~상주간 고속도로가 저 멀리 보이고

 

 

어느 산님이 쌓았는지 돌탑위의 윤지미산 표지석

 

 

 

 

 

야시야님 찰영

 

 

윤지미산에서 화령재 방향의 급한 내리막 길

 

화령재 가기전 아늑한 농촌풍경

 

설여사님이 태화루를 가지고 마중까지~~

 

 

당진~상주간 고속도로 터널위를 지나면서

 

 

 

석도님 찰영

 

 

 

 

 

 

 

 

화령재에서 메기매운탕을 곁들인 점심

 

 

점심 후 다시 단체 사진 아~자자

 

 

 

 

봉황산을 오르면서 뒤돌아본 윤지미산(가운데 봉우리)

 

22번째 코스 신의터재에서 비재 사이에 있는 가장 높은 산인 봉황산

 

울타리님과 설화님 두분을 오랜만에 카메라로 담아봄

 

석도님 찰영

 

딱 걸렸어!! 화이트 맥주

 

 

고랑주!!!

 

 

저 멀리 속리산~~

 

깍아지른 내리막

 

 

 

 

봉황산을 내려서며~~

 

다음 구간의 철 계단

 

먼저 온 분들은 옷도 갈아입고~~!

 

야시야님 찰영

 

 만추~~~